헌정체제와 법치주의
헌법기관의 공백은 헌정체제의 위기다

「1987년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것은 1988년 9월이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12년 2월, 헌법재판관 선출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1년 7월 8일 조대현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인 6월 28일에 국회는 그 후임으로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조용환 변호사(사법연수원 14기)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본회의 표결 처리가 계속 미루어지다가 2012년 2월 10일 본회의에서 부결 처리한 것이다. 재석 252명 중 115명이 찬성표를, 12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조용환 후보자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어처구니없는 국회가 아닐 수 없다. 국회는 재판관 선출 시기를 못 박아둔 헌법재판소법 제6조를 정면으로 위반하였다.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자 의무인 헌법재판관 선출조차 제때에 해내지 못한 것은 여․야의 정치력 빈곤 때문이다.
본회의 부결 후 여․야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상대방을 맹비난하고 사후 공방을 벌였으나, 국민이 보기에는 오십보백보다.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차원에서 야당에 1인의 추천권을 주었음에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토(veto)한 일부 여당(새누리당) 의원들의 정치적 협량(狹量)도 문제려니와, 다수 국민들의 우려를 무시하면서까지 몇 달을 끌며 무조건 관철시키려는 야당의 오기도 애당초 문제였다.
나는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를 위하여 야당 몫으로 재판관 추천권을 주었다면 여당은 정치적 포용력을 발휘하여 야당의 의사를 존중하고 조용환 후보자를 인준해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약자와 소수자의 의견이 숨 쉴 공간은 있어야 한다. 국민은 천편일률적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와 같은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는 단순한 법률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위반이라는 점에 있다. 이것이 위헌적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야말로 헌정체제의 위기이다.
헌법재판관은 9명이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헌법 제111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헌법 제111조 제2항 :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점에서 정원이 법률사항에 불과한 대법관이나 국회의원 또는 국무위원이 일부 결원된 경우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헌법재판관의 공백은 여․야가 정치논리를 떠나서 해결해야 할 헌법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야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정치적 득실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헌법정신에 따라 냉정하게 처리했어야 한다.
2012년 2월에 조용환 재판관 선출안이 부결이 된 후의 여․야의 태도는 더욱 문제였다. 제18대 국회는 지체 없이 다시 후보자 선정과 청문회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아서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에 후임자 인준을 마쳤어야 했다. 여․야는 책임공방을 접고 헌법과 국민을 바라보고 후임 재판관 선출 일정에 합의하여 헌법공백 사태를 단시일 내에 시정하였어야 했다. 그 길만이 그 사이에 잃은 신뢰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었다. 그것만이 헌정체제를 유지하고 존속시켜야 하는 국회의 책무이자 의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적으로는 누구의 책임인가? 조용환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후에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안이 부결되었으면, 국회의장은 지체 없이 국회법 제46조의3 제1항의 규정에 따라 ‘각 교섭단체의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선출안을 제출’하였어야 함에도 국회의장은 국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였다. 후임 재판관은 전임자의 임기만료일에 임명하도록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3항을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법 위반은 원칙적으로 헌법상 탄핵사유가 된다.
이 문제는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을 앞둔 여․야의 정치 일정에 함몰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후임 헌법재판관 공백은 2012년 9월 20일 민주통합당 추천 김이수 재판관이 취임할 때까지 무려 1년 2개월 이상이나 지속되는 심각한 위헌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헌정 공백 사태는 이번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김용덕․박보영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절차도 지연되어, 대법원이 2011년 11월 21일부터 파행적으로 운영된 적도 있다. 다행히 2012년 1월 1일 새벽에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어 사법 공백은 47일 만에 해소되었다. 그 전인 2008년에 양창수 대법관의 경우 43일, 2005년에 김황식·김지형·박시환 대법관의 경우 43일의 공백이 생겼다. 그 후 2012년 7월 10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4인에 대한 국회의임명동의도 지연되어 2012년 7월 11일부터 대법원은 소부를 구성하는 12명의 대법관 중 무려 1/3의 공백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2012년 5월 30일 임기가 개시된 제19대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이 늦어지면서 대법관 후보자 4인에 대한 인사청문 및 동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음으로써, 대법관 4인의 공백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대법관 4인의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이라도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인사청문회법 제3조에 의하면 인사청문특위 위원은 국회의장이 선임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고 국회의장 선출도 늦어지면서 대법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 자체가 늦어진 것이다. 적어도 여·야는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국회의장만이라도 먼저 선출하여 인사청문절차를 서둘렀어야 했다.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실종이자 헌정체제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회가 인사청문 및 임명 동의 절차를 순조롭게 마쳐야 한다는 헌법상·법률상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무슨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위헌 상황이다. 비유하자면, 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의원 보궐·재선거를 정해진 날짜에 실시하지 않는 것을 도저히 상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국회는 2012년 7월 2일에야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청문회를 열어, 대법원 공백 22일 만에 후임 고영한·김신·김창석 대법관이 취임함으로써 대법원 공백은 일부 해소되었지만, 청문회 후에 자진사퇴한 김병화 후보자 후임 대법관 임명은 후보자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하여 절차를 밟으면서 더 늦어졌다. 김소영 대법관은 2012년 11월에야 임명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2006년 11월 27일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다. 이것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동의안을 잘못 제출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 규정(헌법 제111조 제4항 :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을 위반하여 헌법재판소장 지명 후 재판관 직을 사퇴한 전효숙 재판관에 대해 소장임명동의 요청을 한 절차상의 중대한 하자를 비롯하여, 그 일련의 사태는 헌법재판소의 위상에 타격을 준 데서 더 나아가 법치국가로서의 위신마저 훼손한 일대사건이었다.
그 당시 헌법재판소장 자리는 무려 140일 동안이나 공석이 되었다.
전임 소장의 임기 만료 후 수개월 동안 후임자 인준에 실패하여 헌법기관의 수장 자리에 공백이 생기도록 한 것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소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바로 후임자를 지명하지 못한 것은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헌법에 임기가 정해진 헌법기관의 장에 대하여 후임자 지명도 없이 후보자 지명 철회를 한다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헌정사에서 그 동안 헌법재판소가 쌓아온 신뢰와 위상에 크나큰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그와 같은 비정상적인 위헌 상황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국가비상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헌법기관, 그것도 사법부에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은 여․야를 떠나서 그 정치력이 빈곤한 탓이자 삼권분립의 헌정질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가 반복 되고 장기화 된다는 것은, 대내적으로는 입법부나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야기하고, 대외적으로는 법치국가로서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애당초 직무대리가 불가능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공백은 바로 국민의 권익을 제때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어서 더욱 심각한 것이다.
주심 대법관이 사실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법원의 경우 3개 재판부를 이루는 대법관 12명 중 일부의 공석은 그 전임 주심 대법관들에게 배당되어 심리 중이던 모든 상고사건의 재판이 사실상 중단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헌법재판소가 하는 막중한 역할 중 으뜸은 위헌법률심판이고, 위헌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9명 중 1인이 공석이면 재판관 3인만 반대하면 사실상 위헌결정을 못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특히 우리나라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합헌성 심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그 동안 헌법재판소는 창설 이래 수백 개의 법률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선고하는 등 충실한 입법부 견제와 국민 권익 보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재판관의 장기 공석으로 인하여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성 심사를 적시에 하지 못하게 되면, 위헌제청을 한 일선법원의 재판이 지연되고 결국 국민의 권익을 제때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태의 정치적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불문하고 이는 누가 보더라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위헌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국회의 동의절차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지연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긴급한 경우에는 ‘선 임명, 후 인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또는 대법관직무대리 내지 재판관직무대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방안을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결국 개헌사항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법부의 공백만이 문제가 아니다. 헌법기관장의 공백은 수시로 문제 되었다.
경우가 다를지 몰라도 대통령 소속으로서 독립기관의 수장인 감사원장도 헌법상의 4년 임기 중에 후임자 없이 사퇴하여 공석이 된 적이 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전윤철 감사원장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5월 13일 사직하고 그 후임자인 김황식 감사원장이 그 해 9월 8일 임명될 때까지 감사원장은 석 달 이상 공석이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2008년 5월 30월 제18대 국회의원 299명의 임기가 시작되었으나, 정작 그 해 6월 5일의 개원국회 본회의가 무산됨에 따라, 제18대 국회는 원 구성조차 못한 채 표류하였다. 이에 따라 명색이 국가의전서열 2위의 헌법기관장인 국회의장 및 그 직무를 대행할 부의장 2인이 모두 공석이었다. 제19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국회가 개원을 하지 못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은 임기 초에 하도록 되어 있는 선서(국회법 제24조)를 하지 않은 채 각자 국회의원으로서 독자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행정 각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직접 수행하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음으로써 산적한 국정현안에 대한 입법부의 목소리는 민의의 전당을 떠나 외곽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국회가 하는 막중한 역할 중 핵심은 민생입법 기능과 행정부 견제 기능인데, 행정 각부의 소관사항을 심의하는 각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는다면 양 기능 모두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는 결국 국민의 권익과 민생을 제때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론 굵직굵직한 정치적 현안과 대립 때문에 원 구성 협상이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와 같은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면 더더욱 빨리 원 구성 협상을 서둘러 마치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국정현안에 대해 신속히 대처하고 국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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